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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book

중력의 임무

중력의 임무. 할 클레멘트 저. 1954년. 아작에서 재출간해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다.

하드SF의 효시로 불린다고 한다. 과학적 고증이라는 한계선을 긋고, 그 위에서 상상력을 펼치는 노력이 낭만이 넘치던 과거보다 '팩트체크'가 난무하는 요즘(과학적으로 체크하려는 노력인지는 따지지 않겠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사전정보가 없었고, 열독하는 SF팬도 아닌지라 소설에서 묘사하는 행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타원형에 가까운 행성이 지구의 십수배 속도로 자전하고(아침에 일어나 대화 한번 나누면 해가 진다), 양극으로 갈수록 중력은 커져 지구의 최대 700배에 이른다. 이 때문에 극지방으로 갈 수록 '점프'와 같이 지면에서 벗어나는 건 자살행위이며, 고소공포증이 아니라 높은 곳이 곧 공포다. 이곳의 지성체는 전갈처럼 기어다니는 갑각류 모양을 하고 있다.

호러SF를 찍어도 모자를 환경이지만 주인공은 저 지성체이고 지구인은 중력 연구를 위해 방문한 이방인이다. 그래서 전개는 주인공 패거리의 모험기에 가깝고, 지구의 다른 쪽으로 발달한 과학의 힘을 빌어 전에는 위험해 접근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을 탐험해 나가는 게 흥미진진하다. 책 소개글처럼 '마션'을 재밌게 읽었다면 비슷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저자 후기가 멋진데, 아이작 아시모프와 저녁 식사를 하며 소설을 구상하고, 과학적 고증에 대한 독자와의 '전투'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했다. 구글링이 지식과 동일시되는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낭만과 진정성이다.